사건의 시작
6월 9일 월요일, 오전 4시 10분. 자다가 더워서였는지 딸내미가 발로 차서였는지, 아무튼 어렴풋이 깨버린 나는 습관처럼 예스24 앱을 열었다. (원래 이 책을 사 말아 카트에 넣었다 뺐다 하는 게 습관이다.) Forbidden 에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에러 메시지가 떴다. ‘음… 업데이트하다가 뻗었나…?’ 생각하고는 금세 앱을 닫았고, 다시 잠들었다. 그 땐 몰랐지, 이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건의 시작이었을 줄은.

실무자로서는 한숨+눈물+피로의 집합체인 위기 관리
이건 PR을 업으로 해본 사람이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눈 앞이 깜깜해질 정도의 엄청난 위기다. 그런데 의아했던 것은, 내가 처음 사이트 접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하루가 훌쩍 지나도록 아무런 공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6월 9일 아침, 기술 상의 이유로 사이트 접속이 불가능하다는 몇 문장짜리 공지가 전부였다.
2천만명이 가입한 서비스라는데… 하루 판매량을 대충 어림짐작해봤을 때 하루만 서비스가 중단되어도 손해가 어마어마할텐데… 이런 식으로 하루 통으로 서비스가 중단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지만, 벌써 오늘(6/13)로 5일째고, 방금 전에 복구가 완료되었다.
PR을 시작하자마자 약 3년만에 디지털 마케팅 분야로 전향했지만, 어찌저찌 속해 있는 회사가 줄곧 PR 에이전시였기 때문에, 위기 관리 커뮤니케이션을 몇 번 경험해봤는데…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지만 시간 투여가 어마어마하니까.
아마도 담당 PR 에이전시에서는 주니어는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관련 기사, 소셜 버즈 등등을 모니터링하느라 날밤을 까고 있을테고, 시니어는 기자들 문의 응대하느라 목이 쉬어 터져나가고 있을테다. 그 와중에 고객사에 브리프할 보고서 작성도 일이고, 컨설팅도 해야 할테고, 지금까지 나온 것들 보니 예스24에서는 컨설팅 내용을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밀쳐둔 게 분명하다. (위기 관리의 정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운이 참 없다.
시기가 너무 절묘했다. 바로 직전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건으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대중적 민감도가 엄청나게 높아져 있는 상태인 데다가, 예스24로서는 마케팅 모멘텀으로 한 방 터뜨렸어야 할 서울국제도서전이 코앞이다. (이번에 현장 티켓 판매도 없을 정도로 성황일 거라던데…) 도서전 준비는 이미 매몰비용이 있어서 아예 무르지는 못할 것 같기는 하지만,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는 궁금하다. (근데 지금 하는 걸 봐서는 그냥 없었던 일인 척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예스24는 바로 얼마 전에 새로운 이북 단말기를 출시한 참이다. 한참 달려도 모자랄 판에 서비스 중단이라니… 대형 악재라니…
위기 관리의 정석
사실, 위기 관리라고 해봤자 직접 핸들링해본 프로젝트는 몇 되지 않는다. 이런 정도 수준의 대형 악재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위기 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오히려 공식이 명확한 편이다.
-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할 것
- 대처 방안을 명확히 제시할 것
- 커뮤니케이션은 가급적 해당 기업의 얼굴인 사람이 할 것
- 쿨하게 사과할 것 (김호 대표님의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빌려온 표현 맞다.)
- 가장 좋은 위기 관리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예상되는 모든 위기를 예방할 것
이번 사건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들
- 전자책 괜찮은 거 맞니..?
서비스가 중단된 동안 제값 내고 구매해둔 전자책에 접근이 안돼 불안한 유저가 많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는데, 스멀스멀 다른 이북 서비스에도 불안감이 번져가는 것이다. 내 돈 내고 샀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지는 않은, 전자책 판매업체들이 ‘평생 소장’이라는 딱지를 붙여 팔고 있는 그 전자책들… 괜찮은 거 맞을까? (그래서 나는 최근에는 거의 종이책으로 다시 돌아섰다. 전자책은 셀렉트, 크레마클럽 등 구독형 서비스만 활용한다.) - 나는 예스24를 떠나게 될까…?
이미 20년 넘게 사용해온 서비스인데 쉽게 떠나기 힘들겠지. 수요일마다, 주말마다 뿌려주는 쿠폰의 달콤함에서 분명 벗어나지 못할테고… 역시 자본주의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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